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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발리볼의 탄생과 발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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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admin

10월 9, 2020

비치발리볼의 탄생과 발전과정

주요 인터넷 검색 사이트를 통해 ‘비치발리볼의 역사’를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기원은 정확하지 않으나 1920년대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서부의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가족들끼리
6명씩 팀을 이루어 경기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비슷한 시기에 하와이 해변에서 6인조 경기를 하였다고도 한다(두산백과, 2019.1.10. 검색).

한국비치발리볼연맹의 홈페이지에 기록되어 있는비치발리볼의 기원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920년대 초에 하와이의 해변에서 6인 팀이 경기를 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스포츠의 기원이,
비록 같은 시대였으나, 캘리포니아의 산타모니카(미국)에서 가족들끼리 6대6으로 경기를 한데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
(한국비치발리볼연맹, 2019.1.12. 검색)

비치발리볼이 올림픽 정식 종목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그 기원에 대한 규명이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종목적 특성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종목의 명칭이 경기 장소를 상징하는 비치발리볼로 구분되고는 있지만

결국 배구에서 파생된 스포츠이기에 ‘과연 누가 처음으로 이 종목을 창안하고 경기했을까’라는

의문은 의미 없는 논쟁일 뿐인 것이다.

비치발리볼의 초기 발전과정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미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비치발리볼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전파되었고

그 장소는 프랑스 파리의 북서쪽 외각에 위치한 프랑코빌(Franconville)이었다.

이곳에는 프랑스의 문화적 특색이라 할 수 있는 누드캠프(Nudist Camp)가 존재했고

비치발리볼은 바로 이곳에서 주요 스포츠로 성행했다(Beach Volleyball Database 검색, 2019.1.15.).

이후 미국과 유럽의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비치발리볼은 1948년 최초의 역사적인 토너먼트 대회와

함께 하나의 스포츠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다.

194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저스 스테이트 비치(Will Rogers State Beach)에서 개최된

이 대회는 버니 홀츠먼(Bernie Holtzman, -2017)이라는 인물의 주도 하에 운영되었다.

미국 시카고 출신의 홀츠만은 어려서부터 배구를 즐겨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스스로 “배구는 신이 해변의 부랑자에게 준 선물(Volleyball is God’s gift to the beach bum)” 이라고

말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배구에 매혹되어 있었다.

1935년부터 해변에서 배구를 즐겼으며 13세가 될 무렵, 미국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이사를 가면서

비치발리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국제 배구 명예의 전당 검색, 2019.1.16.).

홀츠맨과 팀을 이루어 당시 비치발리볼 대회를 석권한 인물은 칼 스튜어트(Carl Stewart)이다.

홀츠맨에 비해 그 생애에 대한 기록이 많이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두 사람의 팀워크와 배구 실력은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상술한 1948년 토너먼트 대회를 시작으로 10개의 오픈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비치발리볼의 초창기 역사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비치발리볼은 남아메리카에까지 확산되었고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브라질에서도 비치발리볼 토너먼트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만큼 비치발리볼은 해변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어느 나라사람이든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스포츠로 성장해 갔다.

비치발리볼의 확산 과정에 있어서 배구와 다른 특이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만큼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배구의 형태와 유사한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치발리볼의 전 세계적인 확산과정은 어떤 조직체나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도입되고 전파 되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등 일부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즐기던 대중들이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장소를 옮겨 즐기는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일 것이다.

이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가던 비치발리볼은 1962년 조직화 과정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바로 미국의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캘리포니아비치발리볼협회
(California Beach Volleyball Association, CBVA)가 발족된 것이다.

비치발리볼의 핵심지역이던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이 협회는

당대 유일한 비치발리볼 관련 공식 기구로서 규칙을 제정하고 토너먼트 대회 일정을 결정하는 등

비치발리볼의 조직화에 기여한다.

1983년 7월 21일에는 미국에서 프로비치발리볼협회(Association of Volleyball Professionals, AVP)가

발족되었다.

이 단체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투어 비치발리볼 협회이며

캘리포니아주 뉴포트 비치(Newport Beach, California)에 본부를 두고 있다.

AVP는 프로 비치발리볼 투어대회와 관련된 규정을 제정하고 투어 대회를 운영하며

아케데미 운영을 통해 유망주를 발굴 및 육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AVP의 탄생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비치발리볼의 상업성이 이미 검증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경기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을 운영하여 비치발리볼을 더욱 발전시킬 기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비치발리볼의 전세계적 확산을 통해 참가 선수는 물론 관중 동원력이 확인되면서 대회가 개최될 때마다

다양한 후원사가 참여하기 시작했다.

1984년 캘리포니아 주 레돈도 비치(Redondo Beach, California)에서 개최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 프로모터와의 분쟁이 발생하면서 그 이후부터는 AVP가 자체적으로 투어대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AVP 투어 대회의 총 상금이 275,000달러에 이르렀고,

1993년까지 총 상금 370만 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상금 규모의 성장은 비치발리볼의 상업성을 반증한다.

그만큼 비치발리볼은 스포츠로서의 재미와 함께 수익성을 담보로 하는 스포츠이벤트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예컨대 1990년대 이후부터 NBC방송은 비치발리볼 투어대회를 중계했으며 대회에는

약 60만 명의 관중이 동원 되었다.

AVP의 발족 이후 비치발리볼은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

1986년에는 여자 비치발리볼협회(Women’s Professional Volleyball Association, WPVA)가

창설되었으며 1991년에는 국제배구연맹(FIVB)가 주관하는 국제 비치발리볼 시리즈가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다.

1992년에는 국제배구연맹 산하에 비치발리볼 분과가 조직되었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시범종목으로 실시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1996년 제26회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드디어 비치발리볼이 정식 종목으로 실시되었으며

남자 24개 팀, 여자 16개 팀이 최초의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이로써 비치발리볼이 정식으로 국제 올림픽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후 비치발리볼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다.

1998년에 이미 120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비치발리볼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1999년에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남녀 월드챔피언십 대회가 진행되었는데

5,000명 이상의 관중이 관람을 했다.

아울러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비치발리볼이 정식 종목으로 운영되었는데

시드니 인근의 본디비치(Bondi Beach)에 10,000명 규모의 관중석이 만들어질 정도로 흥행에 있어서도

비치발리볼이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현재에도 비치발리볼은 여전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서의 위상을 지켜가고 있다.

오히려 올림픽 종목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종목으로 성장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 2016년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로 올림픽에서 대회 조직위원회가 공개한 종목별

입장권 가격을 살펴보면 육상, 농구, 배구, 비치발리볼의 입장권이 1천 200헤알(한화 약 47만원)으로

책정되어 가장 비싼 종목으로 분류되었다.

가장 저렴한 종목의 입장권 가격이 한화로 약 1만7천원의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비치발리볼의 입장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또한 대회 조직위원회가 입장권을 구분한 기준이 ‘인기 종목일수록 비싼 입장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치발리볼은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종목 중의 하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비치발리볼은 미국의 휴양지 해변가에서 행해지던 놀이의 형태가

유럽과 남아메리카 등 해변이 발달한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1948년 미국에서 버니홀츠먼이라는 인물에 의해 공식적인 경기로 발전되면서

비치발리볼은 전 세계적 스포츠로 확산되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이후 1962년 캘리포니아 비치발리볼협회(California Beach Volleyball Association, CBVA),

1983년 프로비치발리볼협회(Association of Volleyball Professionals, AVP) 등의 협회가 발족되면서

조직화를 이루었고, 국제배구연맹(FIVB) 산하의 한 종목으로서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시행되면서 국제적인 스포츠로서 위상을 확립하게 되었다.

비치발리볼은 현재에도 국제배구연맹 주관의 월드투어 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를 통해

세계적 스포츠로서 그 가치와 흥행성을 인정받으며 성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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